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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연구

머리말한국 사회와 민족주의

작성자 : 류동민, 정성진
작성일자 : 2021-01-14 04:47:35 조회수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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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한국의 사회과학에 짙게 드리워진 숙명과도 같은 존재라 할 것이다. 21세기에도 유사 냉전이 지속되는 한반도에서 그 어떤 사회과학자도 민 족문제를 외면하고서는 제대로 된 분석이나 처방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유달리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를 웅변으로 증명한다. 진보세력은 전통적으로 분단을 민족모순으로 사고하여 왔다. 그러나 변화하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은 우리에게 과연 그러한 인식이 타당한 것인지 그 근본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민족주의를 배타 적 종족주의로 폄하하고 자학적 사관을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극우주의적 포퓰리즘과 결합하면서 박정희체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이승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퇴행적 역사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일본에 “죽창 들고 맞서는 것”과 “민족주의는 야만이다” 사이에 제3의 길은 없는 것일까? 진보적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재구성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러한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이번 호의 특집은 ‘한국 사회와 민족주의’로 구성하였다.
박도영의 논문은 가라타니 고진의 통찰을 빌려와 네이션=스테이트 형성의 과정을 민족민주국면으로 이해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민족에 대한 근대주의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는 바, 이영훈 등의 <반일 종족주의>(미래사, 2019)가 주장하는 한국 민족주의의 “종족성”은 오히려 네이션 형성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절차의 부산물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식민지 근대화론과 박정희 체제에 대한 찬양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분단의 문제를 더 이상 민족문제로 보기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통일은 평화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도발적이다.
이일영은 박도영의 글에 대한 논평문에서 민족을 원생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비과학적임을 인정하면서도 근대주의적 이해 또한 현실과 맞서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의 민족을 다룸에 있어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틀을 뛰어넘는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박도영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그럼에도 지역적 민족주의를 한반도 및 글로벌 한인 네트워크로 이해하자는 대안은 증여와 답례의 교환양식에 기초한 평화 프로세스를 주장하는 박도영의 대안과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으로 더 한층 논의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류동민의 논문은 한국 좌파 민족주의 경제학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박현채와 안병직의 이론적 갈라짐에 관해 분석한 문헌연구이다. 그는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사회성격이라는 실천 전략적 개념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유물론 사이에 불가피한 긴장관계가 존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박현채는 바로 그러한 긴장 속에서 끊임없이 동요하였고, 안병직은 마침내는 그 동요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극적인 사상전환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안병직으로 상징되는 식민지근대화론 및 뉴라이트에 대해, 그 좌파적 기원을 추적함으로써 단지 정서적 비판을 넘어서서 진지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 일반논문 두 편을 게재했다. 에하라 케이(江原慶)는 가치의 양적 표현론: 가치형태론의 기초적 분석에서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에 관한 일본의 우노 고조(宇野弘?)와 구루마 사메조(久留間鮫造) 간의 역사적 논쟁을 재조명하면서 이 논쟁에서 주목되지 못했던 가치형태론의 양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구명한다. 에하라에 따르면 가치형태의 양적 표현의 핵심은 상품소유자가 다른 상품과의 교환을 통해서 그것을 소유하고자 할 때 자신의 자산이 충분한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양적으로 비교하는 데 있으며, 이렇게 접근할 경우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은 오늘날 자산시장의 동학을 설명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김현강은 슬라보예 지젝의 정치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정신 분석학을 중심으로 지젝의 정치 철학을 검토한다. 김현강에 따르면 지젝은 마르크스주의를 정신 분석학의 주체 모델로 보완하는 동시에 정신 분석학을 사회이론으로 확장시켰다. 김현강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 분석학은 물질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마르크스주의에는 개인에 대한 이론이 불충분한 반면, 정신 분석학에는 사회 분석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지젝의 정치 철학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 분석학의 접합을 통해, 투쟁하는 주체에 기초한 해방의 정치 철학을 새롭게 개척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겨울호는 통권 60호이다. 본지는 또 얼마 전 2020년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평가에서 ‘재인증평가’를 획득하여 향후 최소 6년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자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겹경사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본지와 함께 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마르크스주의 분야 국내 유일의 제도권 학술지로서 본지에 주어진 책무를 다할 것을 다짐한다. 끝으로 지난 2009년 이후 본지 편집자문위원으로 본지의 국제화를 위해 애쓰신 이시쿠라 마사오(石倉雅男) 교수가 급서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20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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