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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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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제도화 2.0을 위하여
작성자 경상국립대학교
등록일 2022.08.24
조회수 355
분류 머리말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제도화 2.0을 위하여


지난 2월 말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러시아군이 동우크라이나 지역 상당 부분을 점령한 상태에서 소모전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러시아군 약 5만 명이 사망 혹은 부상했으며, 우크라이나군도 최근에도 하루 100명 내지 200명이 전사하는 데서 보듯이 막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대량 학살을 자행했으며 현재까지 사망한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약 3만 명에 달한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가 입은 재산 손실은 현재 약 6,000억 달러로 추산되며, 전쟁 과정에서 세계 곡물 가격과 유가가 급등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서 회복될 듯 했던 세계경제는 다시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라는 레닌의 표어에서 보듯이 20세기 이후 세계는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되었으며 전쟁은 많은 경우 반전운동을 비롯한 급진적 사회운동의 고조와 기존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졌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의 속편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다수의 인민민주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21세기 들어서도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반전운동의 역사상 유례없는 고조를 유발했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핵공격에 의한 우크라이나 절멸 카드를 만지작거릴 정도로 전쟁의 참화가 극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운동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와는 천양지차로 미미한 실정이다. 이는 진보좌파 상당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미’ ‘진영주의(campism)’의 프레임으로 묵인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야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진영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이번 전쟁을 계급적 시각,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강력한 국제 반전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번 호 특집은 이런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박노자는 특집 첫 번째 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와 우크라이나”에서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본적으로 러시아 제국주의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박노자에 따르면 러시아 제국주의는 19세기 말의 ‘군사적 봉건적’ 제국주의로부터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주변부 소수민족들의 지배층을 하위 동반자로 포섭하는 ‘참여형’ 제국으로 변신했다가 1991년 소련 붕괴 후에는 주로 군사력과 자원에 기초한 ‘아류 제국주의’로 회귀했지만,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로부터 박노자는 진보좌파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미국 제국주의의 하위 경쟁자 혹은 ‘차악’으로 방관 방조해서는 안 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저항의 승리와 ‘혁명적 패전주의’(러시아의 패배)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지윤은 특집 두 번째 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전쟁: 반제국주의 좌파는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낳은 야만적 참상과 국제적 악영향을 확인하면서, 푸틴 정부의 반동적 성격과 이 전쟁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강조한다. 일부 좌파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국주의 간 전쟁으로 간주하고 ‘혁명적 패전주의’[러시아와 우크라이나(미국, NATO)의 동시 패배]를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전지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본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자원 약탈과 영토 강탈을 위한 침략 행위라고 규정하고 국제 반전 평화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전지윤은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 및 친미 우파들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들의 역사적 죄과와 이중성도 비판한다.

이번 호에는 3편의 일반 논문을 게재했다. 먼저 정성진은 “아시아 자본주의론의 진화와 마르크스주의의 기여”에서 옛 소련 붕괴 이후 거의 망각되고 주변화된 동아시아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을 재조명한다. 정성진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는 옛 소련 붕괴 이전 동아시아 자본주의 연구의 주요 패러다임이었으며, 21세기 오늘날에도 동아시아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는 데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정성진은 20세기 이후 동아시아 자본주의론의 진화 과정을 ‘국가자본주의론→발전국가론→포스트 발전국가론→새로운 국가자본주의론’의 순서로 정리한 다음, 이들이 ‘방법론적 민족주의’, 엘리트 발전론, 발전주의, 중국 모델론이라는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 중심 접근과 포스트 발전의 관점에서 포스트자본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장시복은 “1980년대 이후 경기순환과 미국 초국적기업의 경제성과”에서 1980년대 이후 미국 초국적기업의 매출액과 불균등발전 및 세계경제와 주요국의 경기변동의 관계를 주로 미국 해외직접투자 데이터를 사용하여 실증분석한다. 장시복의 실증분석 결과는 미국 초국적기업의 경제 성과와 세계 경기순환 간에 밀접한 관련이 존재하는 반면, 특정 나라의 경기순환은 미국 초국적기업의 경제 성과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경기순환에 따라 미국 초국적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생산지와 본국 및 다른 나라의 판매액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 초국적기업은 장기적으로 높은 이윤을 좇아 이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현강은 “경계와 문턱으로서의 기생충”에서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을 정치철학적으로 평가한다. 김현강은 기생충을 새로운 정치적 주체성으로 규정하고, 이를 위해 세르(M. Serres), 랑시에르, 네그리, 하트, 아감벤, 지젝 등이 고안한 “몫 없는 자들의 몫”, “다중”, “호모 사케르(homo sacer)”, “주권” 등의 개념들을 활용한다. 이를 통해 김현강은 기생충은 체제에 속하지 않은 존재, 체제 내에 자리가 없는 존재이면서도 체제의 존재를 위해 핵심적으로 중요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즉 기생충은 언제나 숨겨져 있는 체제의 진실로서, 체제의 확립에 필수적인 구성적 예외라는 것이다.

이번 호 서평논문에서는 박현웅이 류동민의 『정치경제학 강의노트』(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 2022)를 검토한다. 박현웅은 류동민의 책이 마르크스 경제학 교과서의 새로운 표준을 확립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재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류동민이 이 책에서 시도한 현대경제학의 비판적 수용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현웅은 이런 관점에서 류동민의 책에 제시된 산업별 잉여가치율 계산과 가공자본의 자산가격 버블에 대한 설명을 더 정교하게 확장한다.

이번 호 영어 논문은 알레한드로 바예 바에자(Alejandro Valle Baeza)와 B.글로리아 마르티네스 곤잘레스(B. Gloria Martinez Gonzalez)가 함께 쓴 “잉여가치 이전과 생산성”을 게재했다. 필자들은 이 논문에서 동일 산업 내에서 발생하는 특별잉여가치의 원천이 무엇인지 검토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서 특별잉여가치의 원천에 관해서는 이전설과 창조설이 대립해 왔는데, 필자들은 이 중 창조설이 마르크스의 관점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지지한다. 하지만 필자들은 마르크스의 텍스트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고, 나름대로 설정한 모델을 이용하여 동일 산업 내에서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취득하는 특별잉여가치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의 잉여가치가 이전된 결과로는 설명할 수 없음을 논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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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본지 창간 이후 줄곧 맡아온 편집위원장 자리를 이제 본인의 경상국립대 교수 정년퇴직과 함께 내려놓는다. 진작 내려와야 했음에도 여러 부득이한 사정들로 인해 목 끝까지 다 차서야 그만두어 면구스럽다. 하지만 창간호 이후 이번 호(통권 67호)까지 18년 동안 단 한 번도 결호를 내지 않았고, 또 한 호도 빠짐없이 특집을 게재한 것에서 ‘장기집권’의 변명을 찾고 싶다. 자화자찬을 조금 더 늘어놓자면, 그동안 본지는 마르크스주의 분야 국내 유일의 학술지로서 위상을 굳혔으며, 맑스코뮤날레 주관단체 참여 등을 통해 우리나라 진보좌파의 발전에도 약간의 기여를 했다. 물론 이런 성취는 관계 기관(경상국립대, 사회과학연구원, GAST, 산학협력단, SSK 연구단, 한국연구재단, 한울엠플러스)의 물적 지원과 편집진 여러분의 노고의 결과이며, 무엇보다 독자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 세월 적지 않은 고비와 어려움 속에서도 본지를 지켜준 동지들께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본지는 2004년 창간사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연구의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과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구현을 앞당기는 데 진력”할 것임을 천명했는데, 본지가 그동안 이런 창간 취지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사실 그동안 본지는 제한된 자원을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발전과 혁명적 노동자운동과의 결합을 위한 투쟁에 투입하기보다, ‘수천 개’의 마르크스주의들과의 개방적 대화와 제도권 학계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에 주력해 왔다. 그래서 일부 좌파는 본지가 그동안 경상국립대 사회과학연구원과 대학원 정치경제학과, SSK 연구단과 함께 주도해 온 ‘마르크스주의 연구와 교육의 제도화 프로젝트’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을 통한 포스트 자본주의 기획’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학술적 마르크스주의’일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물론 부당하고 자기 파괴적이다. 오히려 지난 18년 본지를 중심으로 구축된 포스트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대항 헤게모니 진지를 적극 활용하여 마르크스주의 분야에서도 ‘한류’가 형성될 수 있도록 협동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본지에 매우 다행스럽게도, 다음 편집위원장을 본인의 오랜 동지이자 그동안 본지를 함께 키워온 류동민 교수(충남대)가 맡게 되어, 본지가 주도해 온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제도화 프로젝트는 향후에도 계속될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차원,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된다. 본지의 SSCI 등재 등은 단지 그 일부일 것이다. 류동민 교수를 중심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본지 편집위원회에 배전의 성원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2022년 8월 20일 편집위원장 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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